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리뷰
0. 들어가며 절묘하게도 일요일 오전인 지금, 이 소설을 다 읽고 리뷰를 적기 위해 노트북을 켜는 순간 올해 여름 처음으로 매미소리가 밖에서 나기 시작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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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잇는 또 하나의 투명한 작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작품으로 마쓰이에 마사시라는 작가를 만났다. 여름이 다가오는 이맘때쯤이면 정말 읽기 좋은 소설이다. 이후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라는 마사시 작가의 또 다른 소설을 또 만나게 되었다.
소설은 아주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 특유의 유려하고 투명감 있는 문체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그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문체이다. 하루키가 직접적이고 무겁고 심오하다면 마사시는 투명하고 편안하며 유려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독서라는 행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일상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묘사에 감동하게 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힐링하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나 마쓰이에 마사시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결혼에 대한 고찰, '외로움'은 오래 그곳에 남아...
소설의 첫 문장은 '이혼을 했다'로 시작된다. 주인공인 다다시는 48세로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된다. 아내는 다다시보다 고소득의 금융업에 종사하는 드세고 까칠한 여성이다. 평소 책을 좋아하는 다다시가 집안에 책을 여러 장소에 두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일상생활에서의 트러블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이러한 사소한 차이들이 모여 이혼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들이 지극히 현실적이라 '결혼'에 대한 고찰을 하게 만든다. 과연 결혼이라는 제도는..
이혼한 뒤 주인공인 다다시는 아내와 결혼생활 중 만난 애인이었던 '가나'와 우연히 재회하게 되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그렇다. 가나와의 재회나 전처와의 이혼 그리고 가나 아버지의 병, 가나와 다시 교제하기 위해서 여전히 10대 소년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50대의 다다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소설이지만 소설보단 수필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지극히 일어날법한 그런 일들이 소설 속에서 전개된다.
다다시는 평소 결혼을 하게 되면서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홀로 우아하게 누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우아하고 순탄지만은 않은 일들이 펼쳐진다. 인생이란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수 백번은 들었던 말을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진부하지 않고 흥미롭다.
건축학적인 아름다움
다다시는 오래된 집을 재건축한다. 앞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오로지 '나'만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평소 본인의 낭만이었던 부분들을 집을 리모델링하며 하나, 둘 부여해 나간다. 이전 작품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또한 젊은 건축가의 이야기였으니 아마 공통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서도 그런 건축물과 자연에 대한 묘사가 아주 조화롭고 담백하다.
"오래된 걸 이것저것 손보는 게 즐겁거든.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정원도 업자를 부르면 되살아나고, 다다미도 이불도 손질하면 새것이 되고, 장지도 덧문도 마찬가지야. 부엌 공사도 그랬어. 어둡지. 간장 냄새나지, 전체적으로 기름때가 묻어 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운치가 잇었지만, 싹 고쳤더니 몰라보게 좋아졌어. 수명이 다해가던 게 되살아나는 게 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쁜 거야."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본문 中-
벽난로와 다다시, 가나
새로 이사 오게 된 집의 한가운데는 벽난로가 있었다. 벽난로는 쉽게 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다시와 다다시의 동료이며 건축 전문가인 가즈 씨는 벽난로를 피워보려 연기가 마치 체한 듯 역류하며 결국 불을 피우지 못한다. 하지만 가나는 특별했다. 다다시의 집에 놀러 와 벽난로를 보고는 예전부터 불을 자주 피워봤다며 구조적인 결함을 지적하며 척척 불을 피워낸다.
이후 가나와 다다시는 벽난로의 온기를 느끼며 또다시 깊은 대화와 사랑에 빠져든다. 다다시는 가나가 예전에 만났던 여자임에도 쉽게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며 상당히 많은 고뇌의 과정을 거쳐 천천히 다가간다. 하지만 가나가 다가오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벽난로는 중년의 사랑을 대변하는 듯하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쉽게 시도하고 만나고 헤어졌을 터이지만 지금을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더 조심스러워진 것처럼, 한 번에 불을 피울 수 없는 벽난로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년의 사랑은 젊은 날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젊은 시절이 흘러간 뒤에 사람들은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사랑을 하려 할 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순간들을 맞닥뜨리는 것이다.
마치 비틀즈의 Yesterday에 나오는 가사 같다."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but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지난날 사랑은 그냥 하면 되는 쉬운 게임 같았지만, 나는 지금 숨을 곳이 필요하다."
이 집에 군림하는 왕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하물며 라디오도 아니고, 벽난로일 터였다. 불을 피우면 저절로 시선이 모이는 위치에 무게 있게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불을 잊은 벽난로는 지금은 차갑게 식어 커다란 입을 벌린 채 죽은 것 같은 상태다. 그래도 불이 뻘겋게 타오르면 되살아날 것이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본문 中-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다시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다다시의 마음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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