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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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트리의 고찰 에세이/책에 대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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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절묘하게도 일요일 오전인 지금, 이 소설을 다 읽고 리뷰를 적기 위해 노트북을 켜는 순간 올해 여름 처음으로 매미소리가 밖에서 나기 시작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의 소설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은 뒤 다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 졌다. 근데 그 이유가 '작가가 유명해서 다른 책도 읽어봐야지.' 등의 이유가 아닌 진짜 또다시 이 책의 분위기와 즐거움 그리고 명백한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쨌든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겠지만 여름이 다가온 지금 이 시점에 읽으면 정말 소설에 몰입하기 좋다. 

 

 


 

"4학년이 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도 없었고, 빡빡한 종합건설회사에 융화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으며, 그런 모습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포스트모던계 아틀리에가 인기였지만, 나는 그런 디자인에 전혀 소질이 없었다."

 

1. 평소 원하던 직장에 뜻밖의 취직을 한 주인공

 

 주인공인 사카니시군은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 일할 곳을 찾는 흔한 취업 준비생이었다. 사카니시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유명하고 예전부터 존경했던 '무라이 선생님'의 설계 사무소에 지원을 한다. 이 사무소에서는 최근 직원을 채용한지 오래되었으며 직원들 조차 신입사원이 올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지만 사카니시는 뜻밖의 합격 통보를 받게 된다. 그의 이력서와 무라이 선생님과의 잠깐의 면접에서 주인공의 대답이 무라이 선생에게 어떤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렇게 사카니시는 무라이 건축 설계 사무소에 합류하게 된다. 이 회사는 굉장히 특이한데 보통 때는 그냥 사무실에서 일을 하지만 여름에는 여름 별장에 다 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 

 

 보통 우리가 요즘 생각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개념을 적용했을 때, 회사의 동료 선후배들과 퇴근 후에도 함께 같은 집에서 한 계절 내내 지내야 하는 회사는 최악이다. 이런 제도를 시행한다면 뛰쳐나갈 사람이 대부분일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공은 무라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으며 그가 리더인 직장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즐겁게 쫓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여름 별장에서 다 함께 생활하는 것에 대해 싫어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된다.


 

 

"엔진이 꺼지고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공기가 달라졌다. 잎사귀 스치는 소리와 매미, 벌레, 새소리가 한데 섞여 머리 위에서 쏟아져내린다. 풀과 잎사귀 냄새를 머금은 약한 바람. 올려다보니 주변보다 훨씬 밝은 파란 하늘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2. 무라이 설계 사무소 여름 별장에 도착한 주인공

 

 여름을 묘사하는 표현들이 정말 기분 좋게 느껴진다. 주인공은 사무소에 도착해서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여름은 독자에게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주인공은 여러 사람들의 특성을 파악하면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밤 11시까지 여름 별장에서 다 같이 일을 하는 모습은 다른 수많은 보통 직장인들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들의 마음가짐과 본인들의 일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그들의 전문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네한테는 첫 여름이지만, 사무소로서는 이 여름이 분명한 분수령이 될 거야."

 

3. 현대도서관 건축 경합에 참여하는 무라이 사무소

 

 주인공은 첫 여름이지만, 무라이 사무소에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 여름, 웅장하며 눈에 띄는 건축가로 유명한 후나야마 게이이치라는 무라이 선생님의 3년 후배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은 무라이 선생님은 신경을 안 쓰는 듯 하지만 점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준비한다.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이 경합에서 이기기 위해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인가?

 

 소설에서는 정말 직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이는 무라이 설계 사무소에서 직원들이 각자 수행하는 일의 의미가 구성원들에게 그냥 단순한 업무를 넘어서 그들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만족과 자아실현을 제공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무라이 선생님이라는 존경하는 리더를 향한 경외심 또한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실존하는 회사인가? 소설 속의 인물들은 행복해 보인다. 

 


 

'생각해보니 우치다 씨와 마리코를 제외하고 전원이 토요일 밤에 모인 셈이 된다. 나는 그릴의 재를 털고 나서 테라스를 건너는 밤바람 속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4. 주말에도 다 함께 모인 무라이 설계 사무소 직원들

 

 월화수목금 별장에서 일하며 함께 지내고 주말 동안 자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주말에도 거의 모든 직원을 모여버리게 만드는 여름 별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지니는 매력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무라이 사무소의 직원들은 또 하나의 가족 구성원처럼 정말 '가족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언제까지고 신입 사원으로 있을 수는 없다. 잘 다루지 못하는 새 노를 손에 들도,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나는 작은 보트를 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망망한 큰 바다의 일렁임 속에서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5.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주인공 사카니시

 

 도서관 경합에 나가기 전 무라이 선생님의 "도서관 설계담당은 가와라자키, 고바야시, 가사이. 가구공사는 우치다, 나카오, 사카니시가 담당하도록!"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기분을 느끼는 사카니시, 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첫 직장에서 맡은 첫 프로젝트의 긴장감과 감격스러움이 뒤섞인 일렁이는 마음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다. 성장하는 것은 즐거운 기분이다. 

 

 추가적으로 소설 내에서 건축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와 묘사가 진행되는데 솔직히 건축에 대해 모르는 나는 실제로 도면을 보고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더욱이 글로 묘사된 건축계획이나 도면에 대한 설명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문장에서 일에 대한 열정들을 느낄 수 있는 문체였다. 

 

 그리고 마리코와 사카니시군의 사이가 급속히 발전한다. 마리코는 적극적인 여성이었고 사카니시와 마리코는 키스도 하고 그런다.. 갑자기 연애가 중점이 아닌 소설 속에서 이런 장면들이 등장하니 짜장면 먹다가 티라미슈 먹는 느낌이었다. 짜장면도 맛있고 티라미슈도 맛있지만 뭔가 뜻밖이었다. 

 

 무라이 선생님은 자신의 조카인 마리코와 사카니시를 결혼시키려고 한다. 이 시절에는 이런 경우가 흔한 것인가? 어쨌든 뜻밖에 재밌는 전개도 포함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페이지는 언제나 반갑다. 

 


 

삼십 년쯤 전, 선생님은 끝내 자기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무소를 어떻게 해갈지에 대해 미리 글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6. 쓰러진 무라이 선생님과 경합에서 패배한 설계사무소 그리고 끝나가는 여름

 

 선생님의 신뢰를 쌓아가던 사카니시, 그러나 선생님은 쓰러지고 만다. 이후 현대도서관 경합에서는 패배하며, 선생님은 결국 완치하지 못한다. 건강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설계사무소는 2년 동안 더 유지된 뒤 천천히 해체의 수순을 밟고 기존에 설계된 집들의 보수작업에 대한 내용까지 추가적으로 편지에 담겨있다.

 

 사카니시는 30년이 흐른 뒤 쉰이 넘어 자신이 첫 건축가로 일을 시작했던 별장에서의 일들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때의 여러 기억들을 더듬으며 시간이 흐르며 병이 걸리고 떠나간 설계소 사무실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여름 별장' 앞에 서 있다.

 

7. 여름 별장을 인수하는 사카니시

 사카니시는 시간이 흐른 뒤 유키코와 함께 마리코의 연락을 받고 여름 별장을 인수한다. 그리고 별장안에 남아있던 흔적들을 유키코와 함께 찾아 나선다. 마리코와 사카니시는 결혼하지 못했다. 연인으로 오랜 기간 함께했지만 결국 점점 멀어지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후 유키코와 결혼을 하여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카니시가 30년 전을 회상하는 장면들이 아련하고 담담하다. 중년의 사카니시가 23살의 사카니시의 기억을 찾아 수십 년 전 오래된 물건들을 다시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들이 가슴 저리게 표현된다.

 

 그렇게 유키코와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여름 별장에서 그 당시 별장의 중심이 되었던 난로에 장작을 넣어 불타오르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8. 끝내며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에서의 1년 동안 보냈던 시간과 30년 뒤의 회상하는 장면이 겹치는 구조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건축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조류, 식물, 음악, 음식 등 다양한 분야의 일상이 아름답게 녹아있다. 이러한 첨가들이 소설의 풍부함을 더한다. 

 

 늙은 건축가를 존경하는 한 명의 젊은 건축가의 일생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으며 무라이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법한 현실적인 소설이었고, 그렇기에 더 몰입하고 공감하며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읽다 보면 일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다시 고찰하게 만든다. 보통 우리는 조금이라도 큰 회사, 대기업이나 공기업이라는 타이틀은 가진,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고 자랑할 만한, 부모님에게 떳떳할 것 같은 그런 회사에 다니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맹목적으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100개 넘게 적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프로세스가 아주 보통이 된 우리 사회에 살아가면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주 신선하게 이런 관념들을 부수면서 소설은 시작하기에 흥미로웠다.

 

 흔히 이해하고 있던 회사와 사회생활과 대조되는 사실과 상황들로 채워져 더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고 어쩌면 할 수 있었던 일들에 전혀 최선을 다하는 편은 아니었던 나의 인생을 반성하게 만든다. 나도 설레며 즐겁게 진심을 다해 일해보고 쉰이 넘어서 과거를 회상하는 날이 언젠간 오지 않을까

 

 누구나 있었을법한 젊은 날의 여름이야기를 소재로 담백하고 이해하기 쉬웠고,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잔잔하면서 여유로운 소설을 찾는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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